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
한 줄 노트
- 신앙의 비결은 뜨거움이 찾아왔을 때 그 뜨거움을 놓치지 않는 것 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에게 찾아왔던 뜨거움을 식지 않도록 유지하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묵상 레시피
(사무엘상 25:9-35)
9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12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14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7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스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20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2)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34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35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누가복음 24:32)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오늘 다윗은 상한 마음으로 무기를 들고 나발의 집을 향합니다.
- 다윗이 이토록 분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0-11,14-17절)
- 나발의 아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합니까? (18-20절)
- 다윗은 상한 감정 중에 무엇을 결심합니까? (21-22절)
- 다윗의 감정이 야기할 결과는 무엇입니까? (26절)
-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28-31절)
- 지금 나의 감정과 정서 상태는 어떠합니까?
- 그것이 야기할만한 결과들은 무엇입니까?
삶의 자리에서 28-31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17절) (히, 벤 벨리얄)
성행이 악한 자, 불량배, 사특한 자, 비류, 혹은 난류(삿19:22). 나발의 목자, 아비가일의 행동으로 유추해 보건데 다윗의 감정은 충동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생명싸개에 싸였을 것이오(29절) (히, 체루라 비츠로르 하하임)
‘싸이다(체루라)’는 묶다, 라는 의미로 쓰인다. 생명싸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생명의 책, 생명이 기록된 문서. 범죄를 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죽음). 2) 생명 묶음. 보자기나 주머니. 보통 후자의 해석을 많이 택하는데,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싸개로 싸서 안전히 보호하신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목자들이 살아있는 짐승의 수를 셀 때 주머니에 돌을 하나씩 집어넣던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오늘 본문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마음이 뜨거워졌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예수님을 만나도 그 분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한다면 모를까 말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가 하고자 하는 말은 ‘뜨거움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매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비결을 배우지 못한다면, 일상의 단조로운 일들을 만날 때 그 뜨거운 마음이 곧 식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도 챔버스는 아주 흥미로운 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가 ‘죄’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의 무지’ 때문이라는 것이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란 주로 ‘감정’에 의해 휘둘리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감정에 따르는 것을 허락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판단 기준은, 그 감정으로 인해 야기될 결과를 미리 보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일의 결과가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것이라면 절대로 그러한 감정을 허락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실 때, 그 감정을 우리의 삶에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감정은 곧 식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뜨거움을 유지하는 비결은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실 때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정이 성령을 거스르는 일일 때는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이 결정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영적 민감성’입니다. 영적 민감성이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도록 우리를 내어 드리는 것이죠. 챔버스의 표현에 의하면,
“만일 성령이 당신을 요동한다면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결과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잘 알려진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 사건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목회를 하면서 늘 마음의 번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뜨거움이 없으니 확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러던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 거리를 걷다가 한쪽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이 집회를 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낭독하는 것을 듣다가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합니다. 그 때 당시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홉시 15분 전 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strangely warmed)을 느꼈다. 구원을 위해 내가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였다고 나는 느꼈으며 주께서 나의 죄를, 심지어 나까지도 다 거두어 가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전력을 다하여 유별나게 나를 모욕의 대상으로 삼고 또 핍박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나는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방금 내가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느낀 바를 간증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원수는 내 마음에 속삭이기를 “이것은 믿음일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엔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 그 기쁨이 있느냐?”라고 하였다.
그때 나는 평강과 죄에 대한 승리는 구원의 대장(the Captain of our salvation)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의 근본적인 요소이지만, 거듭남의 초기에 보통 나타나는 희락, 특히 깊이 슬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희락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에 따라 어떤 때는 주시기도 하시고 어떤 때는 보류하시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
그렇다. 나는 율법 하에서와 같이 은혜 아래서도 나의 온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나는 자주는 아니라 할지라도 때때로 정복당하였으나, 이제 나는 항상 정복자(always conqueror)이다.
우리의 심령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그 뜨거움을 유지하는 길은 성령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 방향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맡김’이 쉽지 않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산다는 것 역시 온 힘을 다해 죄의 감정과 싸우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없을 때 우리의 싸움은 패할 수밖에 없으나,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의 싸움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회심의 체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변화산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을 가지고 변화산 아래로 내려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보았던 놀라운 광채를 세상으로 가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신앙인들이 죄에 굴복하고 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뜨거움이 찾아왔으나 그 뜨거움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뜨거움은 시간이 지나면 식는 것입니다. 뜨거움이 식지 않도록 하는 비결은 주님이 주시는 비전에 끊임없이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