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중의 새를 보라. .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마 6:26, 28
한 줄 노트
-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여러 일로 근심하지 말고 단순하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킹 핀’은 무엇인가요?그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 바로 믿음 아닐까요?
묵상 레시피
(열왕기상 3:1-15)
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마태복음 6:26,28)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솔로몬은 어떤 왕이었습니까? (1-3절)
- 일천번제를 마쳤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무엇을 물으십니까? (5절)
- 솔로몬이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9절, 6-8절)
-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습니까? (10절)
- 솔로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11-13절)
- 솔로몬에게 무엇을 당부하십니까? (14절)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1절)
솔로몬은 외교적 수완이 좋았던 왕이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깊었던 왕이다. 가시적인 측면에서 솔로몬은 균형 잡힌 왕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근원과 원동력이 무엇인지 그 중심은 하나님이 아신다. 이후의 방향성과 열매들로 그것이 점차 드러난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4절)
산당은 도시, 시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릴 수 있던 제단, 약간 높은 강단이다. 본래 가나안 족속의 제사를 위해 세워졌고 방탕한 의식들이 행해졌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 하나님 제사를 위해 허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역사서는 산당 제사에 부정적이다. 솔로몬 역시도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다. 그러나 일천번제 직후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번제와 수은제를 드린 곳은 ‘예루살렘 언약궤’ 앞이었다. 다윗 왕조에게 우호적인 역대기는 기브온이 예루살렘 시 경계 안에 포함되는 지역이라고 솔로몬을 변호하고 있다(대하 1:3-13).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7절)
솔로몬 왕은 아직까지 겸손했고 ‘듣는’ 왕이었다. 그는 왕으로서의 경험과 능력이 부족함을 시인하며 스스로를 ‘종’으로 표현한다. ‘작은 아이’라고 표현했지만 왕위에 오를 때 이미 자식을 낳을만한 나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왕상11:42, 14:21).
쓰임 받기 원한다면
오늘 말씀은 1911년 오스왈드 챔버스가 스코틀랜드에서 설교했던 산상수훈 시리즈 중 세 번째 설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그의 설교는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이라는 책으로 출간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챔버스의 장례식에서 그의 친구 데이비드 램버트가 참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챔버스의 생애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주석 중 ‘가장 훌륭한 산상수훈 주석’이다.” 오늘 우리도 묵상을 통해 산상수훈의 말씀을 단순하게 살아냄으로써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우리에게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들의 백합화는 그냥 자랍니다. 굳이 염려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챔버스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주변에서 ‘유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늘 애쓰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자의적 노력이 하나님의 계획을 망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한 분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 성장은 신경을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 마음을 집중함으로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염려하지 않아도 백합화는 자연적으로 자라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영적으로 자랄 것입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려는 노력은 ‘염려’에서 나옵니다.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신뢰’와 반비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강해지면 염려는 물러갑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약해지면 염려가 우리 속으로 금세 찾아옵니다. 그러니 늘 생각하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삶도 단순해 질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안절부절 하지 않아도, 하늘의 별처럼 들의 백합화처럼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오늘 산상수훈의 주제는 ‘단순함’입니다. 많이 생각하거나 많이 염려하지 말고 단순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주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볼링’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입니다. 도피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귀를 상징하는 핀을 세워놓고 볼을 굴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 루터는 9개의 핀을 다이아몬드 형태로 세워놓고 게임을 했습니다. 현재의 볼링은 10개의 핀을 세워 놓고 볼을 굴립니다. 모든 핀을 쓰러트려야 좋은 점수를 얻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운데에 있는 5번 핀을 공략해야 스트라이크의 확률이 올라간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5번 핀을 ‘킹 핀’이라고 부릅니다. 초보자들은 10개의 핀을 전부 쳐다보며 볼을 굴리지만, 고수는 킹 핀이라는 한 점을 향해 볼을 굴립니다. 흥미롭죠. 10개를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사실 ‘한 점’을 정확히 맞춰야 합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수 싸움을 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만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은 왕이 된 후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이 일천번제는 그가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흥미롭게도 솔로몬의 타락은 그가 말년에 여러 가지 수, 즉 외교와 군사의 수를 고려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묵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도전은 끝까지 단순하게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단순함’은 모든 복잡한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이런 예화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아마존 밀림에서는 벌목을 한 다음 나무를 강물을 통해 하류로 운반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이 굽이치는 강물을 내려오다가 한 곳에 뒤엉켜 꼼짝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뒤엉킨 나무들을 푸는 방법은 모든 나무를 일일이 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꼬인 원인이 되는 한 나무만 건드리면 모든 나무가 다시 원활하게 떠내려갑니다. 노련한 벌목꾼과 운송자는 ‘그 하나를 보는 눈’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얽히고설킨 문제들로 인하여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문제의 근원을 찾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근심은 문제를 푸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챔버스가 늘 강조했듯이 ‘관계’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당신이 모르는 가운데 당신이 사는 매 순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유용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길 때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돌보시고 기르십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부름 받은 자는 믿음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믿음을 가장 잘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걸음 자체는 인생 계획의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얻은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통해서만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