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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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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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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계시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자녀 된 특권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목적을 위해 남은 고난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묵상질문

지금 하고 있는 일 가운데 ‘주님이 하시는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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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6-38)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어떤 말씀을 받았습니까?(31-33절)
  • 마리아의 반응과 천사의 위로는 무엇입니까? (28-30, 34절)
  • 이 일은 무엇으로 가능할 것입니까? (35-37절)
  • 마리아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38절)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28절)
‘은혜를 받은 자여(헬, 케카리토메네)’에 쓰인 헬라어 원형은 신약에 단 2번 쓰인 독특한 단어로(엡1:6) ‘값없이 은혜를 베풀다, 거저 주다’라는 의미다. 마리아가 입은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거저 주신 은혜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30절)’ 역시 인간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행동에 강조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약한 자에게 베푸시는 호의, 관대한 처사로서 인간이 무조건적으로 받게 되는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심으로 마리아는 이제 은혜 가운데 있게 된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29절)
그럼에도 마리아는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 여인은 요셉과 약혼한 상황이었으며 혹 수태한 사실이 알려지면 비난 뿐 아니라 실제적인 제재를 받을 만한 상황이었다. ‘놀라(헬, 디에타락데’에 쓰인 헬라어는 깊은 혼동, 마음의 심각한 불안을 나타낸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너를 덮으시리니(35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은 전적으로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덮다(헬, 에피스키아세이)’는 ‘그늘을 지우다, 역사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막을 ‘덮을 때’에도 사용된 단어다(출30:23-38).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역사하실 때 그의 몸 안에 생명이 잉태되며,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자신 안에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다. 명성을 잃고 꼬리표가 붙는 일 등의 근심과 염려 등을 뒤로하고 하시겠다는 일에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드린다. 누가는 당시 종교적 권위와 지식을 지녔으며,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오가는 연륜 있는 제사장이며 남성인 사가랴를 먼저 보인다. 그는 마치 아브라함이나 사라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했다(18,20절). 그러나 나사렛 작은 동네, 권력과 중심에서 멀리 있던 어린 여성 마리아는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을 ‘종(헬, 둘로스)’으로 여긴 까닭이다. 개역 개정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마리아의 말 앞에 ‘보라(헬, 이두)’의 말이 사용되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새번역)’ 마리아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며 천사가 고지한 모든 것을 겸손히 받아들인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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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 내 안에 그리고 주님 하나님 안에

오늘 챔버스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으로 묵상을 열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이 썩어질 몸 안에서 태어난다면, 주님의 거룩하신 순전하심과 단순하심과 하나님과 하나됨이 내 안에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 누가복음 1장 35절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역사적으로 이 땅 위에 오실 때, 마리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처녀 마리아에게 실제 가능한 일이었다면 모든 성도들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내 안에 계신 아들로 인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행사할 뿐 아니라, 아버지의 얼굴을 맞대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나의 삶’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사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이전의 상식에서 벗어납니다.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왜 내가 여기서 좌절해야 하지?”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 내 삶을 온전히 사로잡으면, 우리는 더 이상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순전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Gary Garcia의 찬양이 있습니다. “내 안에 사는 이”(Christ in me is to live)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곡입니다.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나의 왕 내 노래 내 생명 또 내 기쁨 나의 힘 나의 검 내 평화 나의 주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X2)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해 내 안에 태어나십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의 권세를 행사하게 되고 아버지를 언제나 얼굴과 얼굴로 대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2. 단순함이 필요하다

챔버스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나 자신도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서 주의 놀라우신 일들을 마음대로 하시도록 마음을 비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을 만큼 내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빚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조심스럽게 주님을 한쪽으로 밀쳐내고 있습니까?”


첫 번째 주제에서 챔버스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가능성이 아니라,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질문 형식’을 빌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과 하나 되기 위한 ‘단순함’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는 이 ‘단순함’이 삶에 선택지를 두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과 하나 되기 위해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하나만을 생각할 수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많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 신앙이 무뎌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단순함은 ‘비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보면 자신을 비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해도 겸손하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비우지 않으면, 그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온전히 역사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형상은 비움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가득한 생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전 묵상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온전한 형상을 만들기 위해 군더더기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조각가와 같은 주님의 손길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냐는 것입니다.


이제 깊은 묵상 가운데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며 정직하게 묻고 대답해야 합니다. 과연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기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내 욕망으로 기도하고 있는가?주님은 이 땅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역을 하셨는데, 지금 나는 그분의 뜻대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명령하고 가르치려고 하는가?최종적으로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지나가고 있는지, 도리어 십자가를 피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우리 성도들의 내면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 ‘채운다’는 뜻은 언제나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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