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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내 삶의 구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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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요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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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마음대로 하라는 사탄의 유혹에 속지 마십시오!참된 구속만이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 우리가 분명하게 속죄함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에 속죄의 열매가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묵상질문

그리스도를 삶의 구심점으로 두었다면, 우리는 그분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11:28-30 + 요한복음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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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13)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십니까? (28절 상반절)
  • 무엇을 하라고 하시며, 무엇을 하겠다고 하십니까? (28절 하반절)
  •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9절 상반절)
  • 우리가 쉼을 얻는 길은 무엇입니까? (29-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28절)
‘수고하고(헬, 코피온테스, 현재 분사 2인칭 복수 호격)’는 육체적인 곤함과 지침, 감정적인 낙담을 의미한다. 문법 상 ‘진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랜 시간 계속하여 지치고 낙담한 상태를 말한다. ‘짐진 자들아(헬, 페포르티스메노이, 현재완료 수동분사 2인칭 복수 호격)’는 수동의 의미 즉, 누군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하여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은 누군가로 인해, 종교적 관행이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몸과 마음, 영적으로 종속되되고 지친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
‘쉬게 하다(헬, 아나파우소)’는 쉼, 안식과 동의어이다. 예수 당시 사람들은 안식일에도 참된 ‘쉼,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 안식일 규정이 그들을 옭아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율법적으로 변질된 신앙, 율법적으로 공격하는 사람과 제도로부터 참된 쉼과 진정한 안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30절)
‘멍에(헬, 쥐고스)’는 가축이 짐수레를 효과적으로 끌 수 있도록 목에 씌우는 도구인 ‘멍에’를 가리킨다. ‘짐(헬, 포르티온)’은 주로 배에 싣는 무거운 짐을 가리키는데, 복음서에서는 주로 유대인과 종교 지도자들이 강요했던 무거운 종교, 의식적 행위들을 비유할 때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멍에와 짐은 변질된 율법(613가지 교훈 및 규칙들)이 아니라 ‘구속적 은혜’, 참 복음을 가리킨다. 참된 쉼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세상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종은 무거운 멍에와 짐을 졌지만,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위임한다. 즉, 믿음으로 얻는 선물, 구속의 은혜에 집중하며 이를 누리는 것이다. 출애굽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로’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신다(출 7:16,8:1,20, 9:1,13).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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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명령

오늘 묵상은 앞으로 우리가 살펴 볼 9개 말씀 시리즈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주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경험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게 될 텐데, 원문의 제목 “Don’t slack off”가 전체 주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삶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게으르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앞선 묵상을 통해 우리는 중보 기도가 잘못될 위험이 없는 사역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중보 기도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또한 진실한 열매는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과연 우리의 영적인 삶이 부실하지는 않은가?

주님의 속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모든 분야를 다스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위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을 위한 첫 번째 명령입니다.

“내 삶의 구심력이 되시는 그분을 깨닫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역설적 진리’를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심력’이 될 때,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손성찬 목사가 쓴 [일상의 유혹]이라는 책에 이러한 진리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무언가를 믿지 않으면 자유 할 수 없다. 마귀는 그 어떤 속임수를 써서라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 에게 주권을 넘기게 한다. 특히 ‘자유’라는 명목 하에 그러한 일을 꾸민다. 그러나 ‘좋은 것’으로 포장된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자유케하지는 못한다. 진정한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건강한 ‘예속’이 보장한다. 야생에서 홀로 생존하기 힘든 우리, 혹여나 육체적 생존이 가능하더라도 홀로 정서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본모습을 바로 보자. 오직 세상의 창조자이자 주인이신 그분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바로 그 말이다.


내 삶의 구심력이신 주님께 애착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간을 들여야 하고 자신을 제한하는 노력과 내적 사역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건강한 예속이 보장 한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손성찬 목사의 글이 오늘 챔버스의 묵상과 잘 맞습니다. 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심점에 두는 것이 중요할까요?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주님께서 계실 때, 우리는 그분으로 인하여 계속 생각하고 계속 봉사하게 됩니다. 그 때 요한복음 15장 7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에 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냐 입니다.



2. 두 번째 명령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봉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려는 노력입니까? 여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느냐’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이냐’ 입니다. 두 번째 명령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제한하여 우리의 애착이 언제나 이 위대한 능력인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구속의 은혜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때, 우리가 하는 어떤 행동과 봉사와 섬김도 잘못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장 13절 말씀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주님 안에 거하는 제자는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삶의 구심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니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모순적으로 들리는 말입니까? 그런데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신비’입니다. 우리의 구심점이 올바르며, 그 구심점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의 시간을 투자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신비입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은혜를 만끽하는 비결]이라는 책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삶의 중심에 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브라질 산호세의 캄포라스라는 도시 근처에는 이상한 시설이 있다. 이십 년 전, 브라질 정부는 교도소의 운영을 두 명의 그리스도인에게 맡겼다. 그 건물은 휴마이타라고 개명되었고,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었다. 오직 두 명의 전임 직원을 제외하면, 모든 업무가 수감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척 콜슨은 그 교도소를 방문한 후에 다음 같은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나는 휴마이타를 방문하였을 때 모든 수감자들이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를 안으로 들여보낸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고 잡혀온 사람이었다. 내가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들은 평온해보였다. 안내자는 나를 예전에 죄수들을 고문하던 작은 독방으로 인도하였다. 지금은 단지 한 사람만 갇혀 있다고 말했다. ‘정말로 들어가 보고 싶으세요?’ ‘물론이지요.’ 그는 천천히 육중한 문을 열었다. 나는 그 독방에 있는 죄수를 보았다. 휴마이타의 식구들이 아름답게 조각해놓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교도소의 유일한 죄수인 예수는 그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남은 형기를 채우고 계십니다.’ 안내자가 조용히 말했다.” 죄의 감옥에서 석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죄의 형벌을 누군가가 다 갚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속은 갈보리에서 이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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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나눔
김소라
가족을 위해 세탁기를 돌릴때도 식사를 준비할때도 모든 생활에 주님을 구심점으로 둔다면 감사하는 마음과 줄거움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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