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요 16:26
한 줄 노트
- 기도의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과 하나 되어 친밀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응답은 기도의 부수적인 산물에 불과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기도의 응답으로 인해 기뻐하나요, 기도할 때 느끼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기뻐하나요?이 질문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묵상 레시피
(사무엘상 28:3-19)
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9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
10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1 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
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13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14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16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요한복음 16:26)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 사울은 어떤 절박한 상황 가운데 놓였습니까?(3-6절)
- 사울이 찾아간 곳은 어디이며, 무엇을 요청했습니까? (7-8,11절)
- 사울이 이 모든 일들을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5절)
- 사울이 응답받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6절)
- 사울이 알고자 했던 일은 결국 어떤 응답을 받습니까? (17-19절)
여호와께서 꿈, 우림, 선지자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6절)
사울은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블레셋 대군이 몰려왔고 하나님의 뜻은 알 방법이 전혀 없었다. 놉의 제사장들은 이미 몰살했고 사무엘마저 죽게 되자 사울은 영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었다. 사울은 일종의 종교 개혁을 단행한다(3절).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실로 회복하기 원해서였는지 기복의 의도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사울의 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16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7절)
사울은 알고자 하는 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신접한 여인을 찾으면서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다(10절). 신접한 여인을 통해 만나려는 사람은 누구인가? 선지자 사무엘이다. 그는 선지자로부터 신탁을 듣고자 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사울은 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전혀 비 신앙적인 행태를 이어간다. 하나님은 이미 사울의 대적이 되셨다(16절).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도 대체 가능한 것이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오늘부터 4일 동안 기도에 관한 묵상을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바빠서 기도하기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챔버스는 그의 사역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기도 생활의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데이빗 맥캐스랜드가 쓴 챔버스의 전기 [오스왈드 챔버스의 순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집트에서) 일이 계속해서 몰려와 그의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갈 때마다 챔버스는 집요하게 아침 시간을 오직 하나님과 보냈습니다. 방갈로 밖에 있는 두 겹으로 된 원추형 텐트는 성경 읽기와 기도에 안성맞춤이었죠. 그는 언제나 아침 6시가 되면 텐트에 앉아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습니다.”
기도가 무엇이고, 우리는 왜 기도하나요? 오늘은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들 앞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습니다. 혹시 십자가 앞에 설 때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이 십자가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챔버스는 계속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 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에 관하여 잘 알려진 말씀 가운데 하나가 마태복음 6장 8절입니다.
“…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질문에 봉착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면 왜 기도해야 하나요?’ 챔버스의 말입니다.
“기도의 개념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응답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응답을 원하여 기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허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 속에 있을 때는 기도하고 나서 응답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 구하는 분의 성품을 알지 못한 채 드리는 기도는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며 재촉하는 모습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거절 받았다는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지는 것이죠.
우리는 오늘 오히려 ‘응답받지 못한 기도의 축복’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참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이 있습니다. 제임스. O. 프레이저 선교사의 전기 [산비]입니다. 프레이저는 중국 내지에서 선교하며 참 많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대한 중국 산맥에 비가 내리면 마음에도 우울하게 빗줄기가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영적 고뇌의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된 프레이저의 간증이자 고백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스튜어트 홀덴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생애 중에 가장 큰 축복은 응답되지 않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저는 제 뜻 대신에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 그러한 경험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는데도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 위에 있는 하늘이 놋쇠같이 딱딱합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놋쇠이지요. 그것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이 현세의 이기심 대신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하도록 가르쳐 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간구가 아주 좋은 것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욕망’ 중 많은 것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우리의 자아에서 나온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쓴 [한 시간 기도로 살기]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 거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의 축복이고, 엄청난 기도의 능력입니다. 응답은 그 다음입니다. 내 상황과 환경에 집중하며 분주하게 살아왔던 것들로부터 내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는 시간이 바로 기도의 시간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우리도 직접 기도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가 우리 삶에 생명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놀라운 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의 ‘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응답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기도하면 도리어 응답을 경험하게 됩니다. 무엇을 구해서가 아니라 ‘친밀함’ 가운데서 깨닫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기독교의 진리]에 보면 이렇게 기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기도 응답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거룩한 성도의 기도라 할지라도 그 기도가 응답되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하나뿐입니다. 기도하는 이유는 기도 응답을 위해서가 아닌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내용을 떠벌리기보다 응답하신 하나님을 높이도록 하십시오. 그 이유는 기도의 의미는 기도 응답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붙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친밀한 관계 속에 있을 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언가 가르치고자 하시는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며 친밀함을 더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