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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기도는 나를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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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 기도를 …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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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기도는 무언가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통로입니다.
  • 기도의 유익은 기도가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라는 축복의 말씀이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고, 실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기도할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 동일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마가복음 9:14-29+ 누가복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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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14-29)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1)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14-16,18-19,28)
  • 예수님의 질문과 아이 아버지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16-17절)
  •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17-18, 20-22절)
  • 아이 아버지는 예수님께 어떤 말을 아룁니까? (22절)
  •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반응은 무엇입니까? (23절)
  • 아이 아버지의 태도는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24절)
  •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8-29절)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16절)
한 아버지가 귀신들린 외아들을 데려왔다(눅9:38). 귀신들려 말도 듣는 것도 하지 못했고 간질 증세까지 있었다(마17:25). 예수를 찾아왔으나 부재중이었고 제자들에게 아들을 먼저 보였으나 치유에 실패한다. 이는 서기관들에게 논쟁거리를 제공했고 큰 무리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예수는 상황을 물으셨으나 아이 아버지는 아들 이야기를 다짜고짜 먼저 꺼낸다. 급하고 간절한 심정인 것이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불쌍히 여기사(22절)
예수께 나아 왔으나 그의 태도는 다소 비관적이다. 아이의 상태가 워낙 중증이었고 어려서부터 오래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여러 번이었을 것이다. 소문으로 듣던 예수께 찾아왔고 그의 제자들에게 보였으나 이미 실패를 보았다. 아마 스승인 예수에 대한 기대도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쌍히 여겨달라(헬, 스플랑크니조마이, 내장을 움직이다)’고 청한다. 예수님을 확신하지 못하지만 밑져야 본전인 마음으로 소원을 아뢰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23절)
아이는 예수를 보는 즉시 반응했다. 20절에는 ‘귀신이 예수를 보고’ 아이에게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번역되었다. 그러나 몇몇 번역본은 ‘아이’가 예수를 보았을 때 귀신이 아이에게 증상을 일으켰다고 본다. 말하고 듣는 것은 못하지만 아이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보는 것’이었다. 그가 참 예수를 만나고 보았을 때 마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요동친다. 한편, 모든 것이 ‘정상’처럼 보이는 아버지는 예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신뢰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소원을 아뢰면서도 ‘<무엇을 any thing> 하실 수 있거든(22절)’이라며 당초에 큰 기대가 없다. 이에 예수님은 ‘<모든 것 all thing>이 가능하다(23절)’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24절)
아이 아버지의 중심은 ‘소원’에서 ‘믿음’으로 옮겨간다. 한글 성경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내가 믿나이다’ 뒤에 ‘주여’라는 호격 명사가 나온다. 그는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주여’라고 부른다. 예수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바뀐 것이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29절)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와 같은 맥락이다. ‘믿음’에 관한 말씀은 단지 아이 아버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치유에 실패한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했다. 제자들은 기도 즉, 하나님에 대한 신뢰 외에 다른 수단과 동기, 마음과 태도로 병자에게 나아갔다. 오늘 ‘믿는 자’의 참 모델은 본문의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아이를 치유하신 데에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앎과 온전한 신뢰가 있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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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적 기도

오늘 묵상은 언뜻 전반과 후반의 내용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첫 번째 단락에서는 기도를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얻는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하는데, 두 번째 단락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많은 것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어려움을 당하시는 분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입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수단이 바로 기도입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을 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주님’이 고통을 당하십니다. 또한 오늘 묵상에서 성경의 가르침과 차이가 있는 기도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교정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자신을 위해 뭔가 얻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개념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 그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적 기도를 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사실을 인식할 때, 기도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우리 안에 그분의 생명이 계심을 믿을 때, 그분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음을 알게 될 때, 기도하는 우리는 무엇을 구하게 될까요?


그런데, 혹시 이런 우리의 생각이 교정된다면 기도에 대한 열망이 식지는 않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열망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기도할 때 강하게 생기니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은 두 번째 단락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2. 기도의 유익

성경은 우리에게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눅 11:10)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간구보다는 변명과 불평을 늘어놓곤 합니다.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에게 담대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주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궁지에 몰려 기도하는 것이 겁쟁이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궁지에 몰렸을 때 실체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유익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린아이처럼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아뢰어야 합니다. 이때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기도하게 만드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축복’이 틀림없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기도의 유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금 모순처럼 느껴지는 상황을 해결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담대하게 아뢸 때 기도의 유익이 있다는 모순 말입니다. 이 문장에 주목해보겠습니다.

“기도는 외부적인 것들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향을 바꾸어내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성향을 바꿉니다. 성향이 바뀐 사람은 바뀐 내용의 기도를 할 것입니다. 처음 기도할 때는 상황이 변해야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상황을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황을 보는 눈이 바뀐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얼마나 기대하고 경험하게 될까요?


유기성 목사님의 [한 시간 기도로 살기]라는 책에 오늘 묵상에 도움이 되는 글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문제가 없어지게 해달라거나, 편한 길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용기입니까?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문제를 치워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악한 자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없고, 악한 자가 없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크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문제를 뛰어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상황이 어렵다고, 그 문제를 빨리 해결해달라고 울며 떼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그 능력으로 문제를 뛰어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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