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해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고후 5:21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한 줄 노트
-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가지는 핵심은 일반적으로 계시된 구속을 개인적 삶에서 적용하고 체험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삶에 구원의 은혜가 임했음을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구원의 역사가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묵상 레시피
(고린도후서 5:14-21)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이 죄를 모르시는 예수님을 무엇으로 삼으셨습니까? (21절 상반절)
-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9절, 21절 하반절)
- 이로 인해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14-15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19절)
사랑의 하나님은 세상과의 화목을 원하셨다. 그러나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의 죄를 없던 것으로 간과 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으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게’하셨다(14-15절). 하나님과 세상의 화목은 아들의 희생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갈3:13).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representation)’로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그분께 속한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롬6:3-4). 또한 죄 없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셔서(대리,substitution),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그분과 교환하여) 하나님의 의가 된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21절)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삼지 않고 ‘죄’로 삼으셨다. 예수님이 ‘죄인’이 되신다면 우리 죄를 대속할 수 없다. ‘죄인’은 자신의 죄 값을 치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죄’ 되게 하셔서 즉, 죄 있는 인간의 육신을 입게 하셔서 ‘죄인’처럼 취급되게 하시고 진노를 한 몸에 받으사 대속을 이루게 하셨다. 죄는 하나님께 결코 묵과될 수도, 간과될 수도 없을 만큼 그분의 마음을 상하고도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죄 용서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존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해 ‘죽고’ 다시 사신 그분과 함께 사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
오늘 묵상의 원제목은 ‘화해’(reconciliation)입니다. 즉, 죄를 ‘관계’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이죠. 챔버스가 죄를 이해하는 일관된 관점은 ‘그릇된 일’이 아닌, ‘그릇된 존재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보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도 여기에 존재하는데, 다른 종교들이 ‘죄악들’을 다룬다면, 기독교는 ‘죄’를 다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죄악들’이란, 존재론적으로 죄의 유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으로 짓는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죄의 유전을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챔버스의 [주의 형상을 본받아]에서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sin)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다. 이는 모든 범죄 행위에 가장 깊이 뿌리내려 있다. 죄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 당신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지은 죄악(sins)이지 ‘죄의 유전’이 아니다…
죄(sin)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씻겨 져야 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죄악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아무런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에게 죄란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 주장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는 당장 반감을 느낄 것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사람들은 크게 분개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어떻게 인류가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친아들’을 죄인 되게 하심으로 이 땅의 죄인들을 성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5장 21절이 바로 그 말씀이죠.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동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와 같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일체이신 그분이 우리와 일체가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존재를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우리의 존재를 바꾸어 회복시키시는 것이었고,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죄악들’을 다루지 않고 ‘존재’를 다룬다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구속의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완벽하게 그 일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일까요? 챔버스의 글입니다.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입니다. 구속의 계시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고 의식하는 문제는 언제나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웨슬리의 구원과 은혜를 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웨슬리는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이라는 말로 이 부분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사건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반은총’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인류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 구원을 일반론에서 특별한 ‘나’에게로 향하게 만들 때,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내가 경험하고 살아내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글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우리들 개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묵상글 속에 나오는 단어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 ‘항복’, 그리고 ‘영적 가난함’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개인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책 [구원의 은혜]에 보면 이 놀라운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인용했던 글을 다시 한 번 오늘 묵상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서, 말 한마디로 물이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면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이적일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이 일을 성취할 자가 없다. 당신의 본성이 바뀐다면 나이아가라를 거꾸로 흐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이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욕망의 방향과 생의 흐름을 바꾸어, 당신의 전 존재가 그분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바꾸실 수 있다. 사실 주님은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을 약속해 주셨다. …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이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멘”이 된다. 이 언약을 굳게 잡자. 이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우리에게도 적용시키자. 그리하면 이 언약이 분명 우리 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