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 1: 16
한 줄 노트
-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이나 건강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묵상질문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이 하나님의 심사를 거친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심사대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골로새서 1:19-23)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베드로전서 1:16)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9절)
-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셨고,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20절)
- 그 일을 하게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21-22절)
- 성도들이 힘쓰고 애써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3절)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19절)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모든 속성, 그의 영, 말씀, 지혜, 영광’ 등 모든 충만이 예수님 안에 있다. 만물은 충만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온전한 충만을 누릴 것이다.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고자 하셨으니(22절)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신 목적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20절).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 사랑에서 멀리 떠난 상태였다. 악한 행실을 일삼으며(고전5:10-11, 6:9-10) 그분과 원수가 되었다(21절). 이제 그들은 하나님과 화해하여 ‘거룩하고 흠 없는’자로 ‘그의 앞에 서게’된다. 고대 파피루스에 의하면 ‘흠 없는’이라는 표현은 법정과 관련된 용어로 ‘책망 받지 않을’, ‘결점 없는’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성도들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책망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롬14:10). 재림의 날에 합당하게 준비를 갖추며 살아야 한다(23절).
하나님의 목표
‘거룩’이라는 주제는 1월 10일 묵상에서 처음으로 다루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뿐 아니라, 거룩한 자 가운데 임하는 기업을 받게 됩니다. 거룩은 그리스도인의 목적이며, 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께서 주시는 거룩을 삶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의 목표와 하나님의 목표가 동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챔버스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계속적으로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삶의 목표는 행복이나 건강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목표가 있습니다. 옳고 선하고 고상한 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실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목표를 알게 됩니다.
“그분의 한 가지 목표는 성도들(saints)을 많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한 영원한 ‘축복 기계’가 아니십니다.”
이 문장에서 ‘성도’는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제자’입니다. 하나님의 한 가지 목표는 교인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성도’, 즉 ‘거룩한 무리’를 만드느냐에 있습니다. 여기에 또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축복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축복을 마치 자판기에 돈을 넣으면 원하는 물건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면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은 단순한 동정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불쌍하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 거룩을 향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원 사역은 우리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의 소원과 명령이 무엇인가요?
베드로전서 1장 16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속죄’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틀어지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 부분에 대하여 아주 강력하게 말합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동정심을 핑계로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는 그 어떤 행위들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거룩은 당신의 발걸음이 더렵혀지지 않는 것이고, 당신의 혀로 더러운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며, 머리로 더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묵상입니다. ‘동정심’은 참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그것을 핑계삼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혹시 나 자신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용납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 생각하고 위하다 보니, 하나님의 거룩함이 훼손되는 것도 눈감아 주지는 않았습니까? 거룩함을 지키는 일은 아주 실제적이기에 철저해야 합니다. 그 어떤 핑계나 변명으로 일관해서는 안 됩니다.
존 비비어의 책 [무엇이 선인가?]에서 거룩을 ‘지위’와 ‘행위’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이 둘의 관계 속에서 거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지위와 관련이 있다. … 이 거룩함은 오로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서 기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이 지위를 우리 행위로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거룩함의 두 번째 측면은 이 지위를 얻은 결과로 나타나는 행위다. 리사가 내 아내가 되자, 그녀의 행동에는 나에 대한 충성심이 나타났다. 그녀는 더 이상 다른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남편으로서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도 그와 같다.
챔버스는 거룩을 지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삶의 영역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심사를 거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거룩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심사를 거쳐 결국 ‘나’를 통해 드러납니다. 여기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심사’를 거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점검받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거나 결정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께 점검받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 역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점검받아야 합니다. ‘거룩’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주어진 신앙적 관계와 결단의 문제입니다. 거룩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판단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며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판단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