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요 9:1-12
보편적 질문: 고난의 문제 그리고 잘못된 질문
오늘 본문에서 길에 앉아 구걸하는 맹인을 예수님은 보셨지만 제자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고난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부채의식 또한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라고 묻는 것은 부채의식을 갖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잘못된 질문이 아니었을까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발견하고 싶었던 것이죠. 제자들의 질문을 통해 그들이 타인의 고통을 쉽게 다루면서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정된 해답
제자들의 잘못된 질문에 예수님은 교정된 해답을 내놓으셨습니다. 이 문제를 분리된 ‘너와 나’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예수님의 해답 속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맹인의 인생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그의 불행의 이유를 찾으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나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는가의 여부로 결정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일하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시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해하지 할 수 없는 순간에도 “우리 인생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제자들의 잘못된 질문을 예수님은 ‘소명’의 관점에서 풀어주십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드러나고, 날 때부터 보이지 않는 이의 인생도 예수님을 만난 이후 변화됩니다. 맹인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맹인도 자신의 일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이 보게 되었음을 증거 합니다.
“…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명의 긴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낮에는 얼마든지 주신 소명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과 불행의 이유를 밝히는데 허비하기에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나 일하시고 그분의 역사를 드러내시기에 오늘도 우리는 소명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천도서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필립 얀시 저, 이용복 역(규장, 2014.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