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
마 5:5
온유를 생각한다!
‘온유하다’는 말이 미덕이기보다 무능력이라 인식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예수님의 선언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꾸 힘을 달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도는 힘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가 얻는 것보다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와 온유하게 내려놓는 삶에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자만이 멍에를 메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온유에 대한 잘못된 이해 vs 올바른 이해!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를 오랫동안 잘못 이해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부당하고 불합리한 일들에 침묵하는 것이 ‘온유함’이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온유함’이라는 이름 아래 도덕적인 무관심을 당연시 했습니다. 온유함은 어떻게 할 수 없기에 불의 앞에 굴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의 본성에 굴복하는 것은 약함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온유함이란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온유함은 ‘십자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며, 십자가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연약해지느냐, 아니면 자신의 욕망에 연약해 지느냐에 따라 온유함이 나약함으로 온유함이 축복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제사장에게 하셨던 행동은 ‘온유함’이라는 것보다 무섭게 꾸짖는 모습이 더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은 ‘감정적 배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땅을 차지하리라!
온유한 자에게 ‘땅을 차지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밟는 모든 곳이 우리의 사역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온유함으로 살아가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소유할 땅이 참 많습니다. 어디서나 환영받는 사람이 되니, 그가 밟는 모든 땅이 그의 소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어디에나 설 땅이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온유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적용과 기도
온유함은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온유함입니다. 온유한 자에게는 따라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바로 땅을 소유하는 것인데, 서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 곳곳마다 주어진 땅 가운데 ‘온유함’을 나타내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천도서
팔복
존 맥아더 저(생명의 말씀사, 2009.7.5.)
